[댁의 아파트 관리비 새고 있진 않나요]
서울시, 11개 단지 監査입찰·계약비리 요지경
송파구 E아파트 - 비상문 등 전문성 필요 공사, 자격증 없는 업체와 계약
구로구 O아파트 - 인근단지 4분의 1값만 받고 재활용품 팔아 주민에 손실
서울 성북구 H아파트는 2012년 열교환기 교체 공사를 했다. 실제론 1860만원짜리 단일 계약을 11개로 쪼개 업체 한 곳과 수의계약했다. 2010년부터 200만원 이상 공사에 대해 수의계약을 금지한 주택법 규정을 피해가기 위해 선택한 '꼼수'였다.
중구 N아파트에선 2010년 초 방수·도장 공사 입찰 과정에서 업체들끼리 담합한 흔적이 드러났다. 업체 4곳 모두 23억원~25억원 사이 엇비슷한 가격을 써냈고, 최종 계약은 그보다 약간 할인된 22억7000여만원에 체결됐다. 기술사가 포함된 서울시 감사팀이 조사해보니 이 공사비의 20%가 넘는 4억8000만원가량이 부풀려진 것으로 추정되면서, 관련자들이 수사를 받게(수사 의뢰)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아파트 관리 비리 특별 감사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감사는 서울시가 지난 6월 한달간 감사팀 100여명을 투입해 실시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서울시가 8일 발표한 아파트 단지 11곳에 대한 집중 감사 결과에선 담합·쪼개기·특혜성 밀어주기 등 아파트 보수공사·용역 계약을 둘러싼 비리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일부 사례에선 '검은 돈거래'를 의심할 수 있는 단서들도 나왔다. 서울시는 조사 대상 단지 11곳 가운데 10곳에서 불법 수의계약을 56건(39억원) 적발했다고 밝혔다.
◇눈속임, 쪼개기, 입찰가 흘리기… 탈법 계약 백태(百態)
중랑구 H아파트 입주자 대표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재활용품 수거업체 선정을 미루다 수의계약을 하도록 관리소장에게 위임했다. 서울시가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동대표가 업체에서 100만원을 수수한 단서가 드러나 해당 동대표가 해임됐다.
서울 송파구 E아파트는 지난 2011년 5월 엘리베이터 유지보수 용역 입찰을 실시했지만 참여한 업체 7곳 모두 필요한 자격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무효가 됐다. 한 달 후 재입찰에서 최저가를 써낸 업체가 계약을 따냈다.
그런데 서울시가 계약 과정을 조사해보니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입찰은 가격 등을 비밀에 부치게 돼 있는데, 첫 입찰 때 가격이 적힌 견적서가 모두 개봉되면서 각 업체가 써낸 입찰 가격이 사실상 공개된 것이다. 계약을 따낸 업체는 재입찰에서 첫 입찰 때 쓴 가격보다 월(月) 23만원을 더 받겠다고 쓰고도 '최저가 업체'가 될 수 있었다. 서울시는 "첫 입찰 때 다른 업체들의 가격을 알고, 재입찰 때 가격을 올려 제시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입장에선 그만큼의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자격 미달 업체가 계약을 따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송파구 E아파트에선 2010년 1500만원짜리 비상문 설치 공사 계약을 전문 자격증도 없는 업체가 땄다. 중구 N아파트는 청소 용역 업체 선정 때 '3개월 통장 잔액이 평균 2억원 이상인 업체'라는 조건을 내걸고도, 업주 개인 통장 잔액까지 합쳐 계산해주는 '억지 셈법'을 동원해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밀어주기 특혜 계약으로 주민은 손해
영등포구 Y아파트는 2006년부터 면적이 약 19평인 공용 시설을 보증금 880만원, 월세 94만원에 업자에게 장기 임대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 등에 확인한 결과 그보다 위치가 나쁘거나 면적이 좁은 곳도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60만원을 받고 있었다. '특혜' 없이 제값을 받았다면 아파트 수입이 두 배쯤 늘어났을 것으로 서울시는 예상했다.
구로구의 O아파트는 2012년 재활용품 수거 업체를 선정하면서 주변 아파트 단지보다 계약 단가가 훨씬 낮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약해 주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서울시는 말했다. 서울시가 확인한 결과 이 아파트의 가구당 재활용품 단가는 800원으로 주변 단지의 4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성북구 H아파트는 주민 대피 시설을 무술경호단체 등에 불법 임대하는 등의 방법으로 아파트에 2억7000만원 손해를 끼쳤고, 강북구의 S아파트는 주민 공동 시설에 있던 골프 연습장을 입주자대표회의가 아파트 장기수선충당금을 빼내 인수한 사실이 적발(횡령·배임 혐의로 수사 의뢰)됐다고 서울시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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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새는 관리비
장기수선충당금으로 배관공사비 2배 과다 지급
관리비 안내 자격없는 棟대표… 회의수당 60만원 버젓이 타내
서울 중랑구 H아파트에선 2011년 8월부터 1년간 공사를 42건 하면서 장기수선충당금 9억7000만원을 썼다. 서울시는 이 가운데 난방 배관 공사 21건(7억6000만원)의 적정 공사비를 산출한 결과, 공사비의 절반에 가까운 3억7000만원가량이 과다 지급된 것으로 드러나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아파트 주민의 재산인 장기수선충당금이 줄줄 새고 있었던 것이다. 강남구의 D아파트는 회계장부에 주민들에게서 걷은 장기수선충당금 13억8500여만원이 예금돼 있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 통장에는 10억2100만원만 예금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액인 3억6300여만원은 써서는 안 되는 용도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아파트 동대표나 부녀회 등이 관리비를 축내는 사례가 수두룩했다. 충당금 3억원을 엉뚱한 데 쓴 것으로 드러난 강남구 D아파트에선 주민 친목 단체가 운영비를 매달 250만원씩 관리비에서 타가고도, 회의비 등 명목으로 260만원을 또 관리비에서 빼갔다.
성북구 H아파트의 동대표는 3개월간 관리비를 내지 않아 동대표 자격이 박탈됐는데도 이후 6개월간 입주자대표회의 출석수당(회의수당) 60만원을 타갔다가, 이번 조사에서 적발됐다. 강남구 D아파트에선 옆 재건축아파트 공사 소음 피해에 따른 주민 보상금 1억5000만원 가운데 1억3000만원을 '대책위' 참여 주민 일부가 유용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서울시는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주민 비상대책회의가 갈등을 빚어 관리 업체를 따로따로 선정하면서 2억5000만원이나 되는 아파트 관리비가 경비비·인건비 등으로 이중(二重) 지출된 아파트도 있었다.
동작구 D아파트에선 부녀회가 아파트의 잡수입을 관리하면서 2011~2013년 3년간 1억800여만원을 잡수입에서 빼내 선물·행사 비용 등으로 써버렸다.
잡수입은 원래 관리비로 귀속시켜 주민에게 돌려주거나 아파트 살림에 보태야 하는 돈이다. 중구 N아파트는 입주자회장 취임식에 관리비 110만원을 지출했다.
구로구 O아파트는 입주자회장의 새마을금고 이사장 당선을 축하하는 플래카드 제작 비용을 관리비로 지출하고, '공동체 활성화'에 600만원을 썼다고 장부에 기록하고도 증빙 서류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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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까지 속이는 아파트 非理… 엉터리 회계 수두룩]
-눈 먼 돈 '구청 보조금'
공사비 지원하는 점 노려 비용 부풀려 영수증 제출… 보조금 1000만원 더 받아
-제멋대로인 입주자대표회의
100% 찬성이 연속 나오거나 용지 미리 우편함에 넣고 선거… 공무원이 7년간 동대표하기도
비리 아파트에 구청의 보조금은 눈먼 돈이나 다름없었다. 아파트가 구청의 시정 명령을 눈속임으로 넘기는 경우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서울 동작구의 D아파트는 지난 2009년 5월 아파트 보도블록 공사를 하면서 구청에 보조금 신청을 했다. 2009년 공동주택 보조금지원계획에 따라 구청은 아파트 공사비용 중 50%를 지원해줬다. D아파트는 구청에 공사 비용을 1억10만원으로 신고했고, 관련 계약서와 비용 영수증도 제출했다.
구청은 공사 비용의 50%인 5000만원을 D아파트 공사보조금으로 지급했다. 하지만 실제로 D아파트가 보도블록 공사에 쓴 비용은 7200만원이었다. D아파트는 구청에서 실제 공사비의 55%인 3960만원만 지원받아야 했지만, 이중 계약서와 영수증을 통해 1040만원을 더 타낸 것이다.
입찰 담합이나 공사비 부풀리기는 그대로 부실시공으로 이어졌다. 이번 서울시 아파트 관리 실태 조사 과정에서 적발된 철관 본체 및 연결부위의 부실시공 모습. /서울시 제공
D아파트는 똑같은 수법으로 2010년에는 아파트 하수관 보수·준설 공사를 한다며 총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 1100만원을 추가로 타냈다. D아파트가 2년간 구청을 속여 받아간 지원금만 2140만원(1040만원+1100만원)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서울시가 지난 6월 한 달간 서울 시내 11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맑은아파트 만들기' 일제 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서울시는 D아파트의 관리사무소에서 원본 영수증을 확보, 이러한 사실을 적발했고 앞으로 5년간 보조금 지원을 중단키로 했다.
또 부당 지급된 보조금은 구청에 반납하라고 명령했다. 이번 서울시 조사 과정에서 아파트들이 선거 및 투표를 엉터리로 하거나 관리업체를 동원해 회계를 조작한 사실도 나타났다. 서울 송파구의 E아파트는 작년 7월 회의참석비 200만원을 과다 지출해 송파구청으로부터 환수 명령을 받았다. 돈을 다시 채워 넣으라는 명령이었다. E아파트는 송파구청을 속이기 위해 아파트 관리업체에 돈을 대신 납부하도록 한 뒤 송파구청에 회의참석비를 다시 채워 넣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돈을 대납한 아파트 관리업체는 지난 3월 E아파트에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E아파트는 결국 170만원을 관리업체에 돌려줬다. 회의참석비 200만원 가운데 170만원은 다시 관리비 통장 밖으로 새 나간 셈이다.
서울시는 관리주체인 구청을 속인 E아파트에 대해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입주민의 대표기구인 입주자대표회의에선 비밀투표 원칙이 무시되거나 100% 찬성이 연속으로 나오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가 잇달았다. 구로구 O아파트에서는 지난 2011년부터 2년간 29차례 열린 입주자대표회의의 투표에서 모두 100% 찬성이 나왔다. 입주자대표회장은 "동대표가 소수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만장일치 의결을 권장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입주자대표 회의록을 보면 회의 참석자와 투표자의 수가 맞지 않는 경우가 절반 수준일 만큼 관리가 허술했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O아파트에서는 현직 공무원이 2004년부터 7년간 동대표를 맡았는데, 현행법상 공무원이 아파트 동대표를 하려면 소속 기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함에도 7년간 한 번도 허가를 받은 적이 없었다.
부적절한 선거도 적발됐다. 강동구 H아파트에서는 작년 5월 동대표 선거 2일 전 투표용지를 각 가구 우편함에 돌렸다. 동대표를 선출할 때는 '비밀투표'를 위해 법령에 따라 아파트 안의 적절한 장소에 투표소와 투표함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서는 미리 우편함에 나눠준 투표용지를 투표 당일 걷는 식으로 선거를 치렀다. 서울시는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